책 리뷰

[책,영화 예고편으로 만나다]-EP3.종이동물원(The paper menagerie and other stories)│켄 리우(Ken Liu)│환상문학은 그저 환상에 불과할까?

SEA OTTER'S BOOKSHOP 2019. 6. 11. 11:34

안녕하세요, 해달책방입니다. ‘책, 영화 예고편으로 만나다’에서 세번째로 다뤄 볼 소설은 2011년 켄 리우 작가가 발표한 단편소설집 ‘종이 동물원’입니다.

미국에 사는 주인공 ‘잭’은 어렸을 적 엄마가 종이 호랑이 ‘라오후’를 만들어 준 기억을 떠올립니다. 엄마는 중국인이었고 영어도 잘못해 엄마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열 살 무렵,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싸구려 중국제 종이쪼가리’라며 라오후를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그 후 잭은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아빠가 엄마를 신부 카달로그에서 골라 사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며, 엄마를 경멸하기까지 합니다.

 

청년이 된 잭은 병에 걸려 돌아가신 엄마의 짐을 정리하다 상자에 들어있는 빛바랜 종이 동물인형들을 발견합니다. 잭의 아내 수전은 종이인형을 거실 곳곳에 전시해 놓습니다. 잭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 뭉치를 발견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자, 갑자기 종이뭉치가 부풀어 올라 라오후로 변신했습니다. “갸르르릉!” 무릎 위로 뛰어올라 저절로 펴진 라오후 속에는 편지가 한자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관광객들에게로 가 편지의 내용을 물어 봅니다.

알고 보니, 엄마는 1966년 중국 문화대혁명으로 고아가 되었고, 외삼촌을 찾기 위해 홍콩으로 넘어갔던 것이었습니다. 홍콩으로 넘어가다 낯선 남자들에게 붙잡힌 엄마는 가정부로 팔려갔고, 잘못하지 않아도 온갖 이유로 매를 맞는게 일상이었습니다. 16살 무렵, 시장에서 한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언젠가 바깥 주인이 너를 덮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아시아인 아내를 맞이하려는 미국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 엄마는 온갖 거짓말을 지어내 카달로그에 사진을 실었고, 아빠를 만나 미국 코네티컷 주 교외로 이민 오게 되었습니다. 잭은 포장지를 다시 접어 라오후를 만들었고, 팔꿈치 안쪽에 올려놓은 채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22페이지 분량 정도(한국어 번역판 기준) 되는 이 짧은 소설의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환상문학 상인 휴고(Hugo Award), 네뷸러(Nebula Award) 그리고 세계 환상문학상(World fantasy Award)을 동시에 수상하였습니다. 참고로 환상문학은 공상과학소설과 판타지소설을 아우르는 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2016년 3월, 켄 리우는 ‘종이 동물원’을 표제작으로, 단편소설 모음집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 소설집 역시 공상과학분야의 권위있는 잡지사 로커스의 눈에 들었고, 2017년 로커스 최우수 선집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황금가지 출판사를 통해 책이 출간되었으며, 한국어 번역판에는 원서에 실린 15편의 소설 중 ‘All the flavors’를 제외한 14편의 작품만 실려 있습니다. 출판사에 의하면 ‘All the flavors’는 중편소설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다른 단편집에 수록 예정이라고 합니다.

14편의 작품들을 공통 주제로 분류 해보았습니다. 각각의 작품들을 ‘개인’이라는 커다란 키워드 아래, ‘역사’, ‘문자’, ‘기술’로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작품을 꼽자면 ‘천생연분’, ‘파자점술사’, ‘파’,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천생연분’은 센틸리언이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틸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틸리가 인간의 의사결정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센틸리언사를 무력화시킬 계획을 세우지만, 틸리는 키보드를 치는 진동패턴, 유리창의 흔들림까지 스토킹해 그들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듭니다.

‘파자점술사’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 텍사스에서 대만으로 이사 온 초등학생 릴리의 이야기입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릴리를 도와준 소년 테디는 간 선생님이라는 노인을 만나게 해줍니다. 노인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릴리가 어젯밤 우연히 알게 된 영어 단어 ‘thalassocracy(제해권)’ 뿐만 아니라 그가 살던 ‘美國(미국)’을 파자점술로 해석해줍니다. 릴리는 노인에게서 들은 대만 2·28사건을 아버지에게 말했고, 그날 밤 이후 마을에선 노인과 소년의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파(波)’는 지구의 우주 개척단이 행성 ‘처녀자리 61’을 향해 400년 간 항해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구와의 통신이 끊긴지 10년만에 이들은 지구로부터 노화를 막는 시술에 관한 문서를 받습니다. 시술 받지 않은 자와 시술 받은 자로 나뉘어진 개척단은 목표지에 도착하자 금속으로 된 외계인을 발견합니다. 알고 보니 외계인은 그들보다 먼저 도착한 미래 인류였고, 개척단은 금속으로 변할 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송사(訟師)와 원숭이 왕’은 소송의 전문가를 뜻하는 송사(訟師) 전호리의 이야기입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 남자는 머릿속에서 원숭이 왕과 대화를 해 영리한 꾀로 어려움을 피해 나갑니다. 한 번은 잘못된 계약을 해 어려움에 처한 여자를 도와주기 위해 문장에 점 하나를 찍어, 위기에서 빠져 나옵니다. 과연 그는 다른 사건도 무사히 처리할 수 있을까요?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과학자 아내와 역사학자 남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내는 ‘뵘 기리노 입자(Bohm-Kirino particles)’를 증명했는데, 이 입자는 쌍으로 이루어졌고, 입자 하나를 관찰하는 순간 하나는 영원히 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부부는 이 입자를 이용해 과거 731부대가 자행한 만행을 관찰할 수 있었지만, 역사의 증거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각 국가들은 시간여행 전면 중지 협약을 맺게 됩니다.

환상문학(the fantastic)은 그저 ‘환상’에 불과한 걸까요? 구글, 스마트폰, 이메일을 예언한 과학소설의 대가 ‘아서 클라크’는 자신의 단편집 서문에서 과학소설과 판타지소설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과학 소설은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다루는 것인데 우리 대부분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판타지 소설이란 일어날 수 없는 것을 다루지만 종종 우리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결국 환상문학이란 서술형식이 ‘환상적’일 뿐, 어느정도 ‘현실의 욕망’을 바탕으로 서술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종이 동물원에 실린 단편소설들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