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해달책방X재료연구소] 생체공학기술은 치료를 넘어 인체 증강을 꿈꾼다! 석고 의족이 바이오닉 다리가 되기까지│신체설계자(The body builders)│애덤 피오리

SEA OTTER'S BOOKSHOP 2019. 10. 10. 15:49

https://youtu.be/9TeR0HcdjHg

1982년 1월, 17살 소년 휴 허(Hugh Herr)는 20살 제프 배처(Jeff Batzer)와 함께 워싱턴 산 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화이트아웃 상태에 빠져 앞이 전혀 보이질 않자 둘은 산행을 포기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 갑니다. 허는 빙판길의 살얼음을 두 번이나 밟고 찬 물에 무릎까지 빠져버립니다.

 

산에 오른 지 3일이 지난 시점까지 그들은 길을 찾지 못해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한 여자가 암벽 아래서 떨고 있는 둘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구조됩니다.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휴 허와 제프 배처 모두 동상 증세가 심각했습니다. 둘 다 몸의 일부를 잘라낼 수 밖에 없었는데, 허의 상태는 더 심각해 무릎 아래를 완전히 절단하게 되었죠.

 

석고로 만든 의족을 질질 끌며 펜실베이니아 집으로 돌아온 허는 집 뒤 옥수수 밭을 달리고, 암벽에 매달려 올라가는 꿈을 꿉니다. 전처럼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죠.

 

하지절단수술을 받은 지 불과 7주가 지난 어느 날, 허는 석고 의족을 낀 상태에서 강인한 의지만으로 서스퀘해나의 절벽을 올랐습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암벽등반에 최적화된 의족을 만들기 위해 의수족 전문가 프랭크 말론(Frank malone)을 만나게 되죠.

 

우선 알루미늄을 이용해 의족의 무게를 낮추었고, 의족의 길이를 2m26cm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바위 모서리를 잘 디디기 위해 발은 아기의 것처럼 작게 만들었죠. 바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등산화용 고무밑창을 붙였습니다.

 

조악하게 개조한 의족이었지만 막상 착용해보니 몸놀림이 빨라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의족은 어떤 등반가도 갈 수 없는 각도에 공간을 만들어냈고, 허는 또 한 번 성공적으로 암벽을 탈 수 있었습니다. 개조된 의족을 착용한 그는 더 이상 중증 장애인이 아니었습니다. 한 명의 증강된 인간이었죠. 암벽등반에 성공하자, 그는 생각합니다. ‘의족을 간단히 개량해 암벽 등반도 할 수 있다면 평지에서 쓰는 의족은 어느 수준까지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까?’

 

그 해 가을 밀러스빌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된 허는 수학과 물리학에 매진 해야겠다는 동기를 받고 우수한 성적을 거둡니다. 졸업 무렵 그는 특허도 출원하게 되는데요, 부드러운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팽창식 공기주머니를 부착하여 의족으로 인한 찰과상을 방지하는 내용이었죠. 그는 MIT 기계공학과 대학원에 합격하면서 오늘날 MIT 교수로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MIT에 입학한 후 허는 실제 다리처럼 움직이는 의족을 개발하고자 마음 먹지만,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 생체역학의 기초부터 공부해야 했습니다. 생체역학은, 우리 몸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응용 기술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허는 아킬레스건과 족궁이 우리 몸의 스프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게 된 후 이를 응용한 신발을 나이키에 제안하지만 출시에는 실패합니다. 이 신발 검토를 담당했던 하버드 대학 토머스 맥마흔 교수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휴 허가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맥마흔 교수는 아킬레스건과 족궁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질점(point mass)에 있음을 알려 줍니다. 다리에서 압축된 에너지가 모이는 부분을 의미하는 질점은 걸을 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최적의 각도와 강도를 계산해줍니다.

 

이어 허는 발목이 다리의 모터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 발목이 아닌 발목 모양만 흉내 낸 의족으로는 균형을 잘 못 잡고 느리게 걸을 수 밖에 없었죠.

 

질점과 발목의 역할을 알게 된 이후, 허는 컴퓨터 제어기술과 모터를 의족에 결합합니다. 컴퓨터는 질점을 정교하게 계산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모터는 발목 역할을 했습니다. 전기 센서가 의족 착용자의 발걸음 데이터를 컴퓨터에 보내면, 컴퓨터는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질점을 만들어내는 발걸음을 찾아주며, 적절한 발걸음의 강도와 각도에 따라 모터를 작동시킵니다.

 

컴퓨터기술을 접목시킬 때까지도 의족은 알루미늄과 실리콘, 카본으로 만들어져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컴퓨터와 센서, 모터, 전기 플러그까지 포함하면 6kg나 되었죠. 일상에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허는 장치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참고문헌을 찾다가, 벼룩을 관찰한 기록을 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벼룩은 자기 몸의 100배나 달하는 힘을 순간적으로 분출해 튀어 오르는데요, 다리 근육에 있는 스프링 모양의 섬유질이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죠. 허는 생각합니다. ‘그래! 모터에 더 많은 스프링을 연결하는 거야!’

 

허는 모터에 망 구조로 된 스프링을 부착하게 되는데, 이 망은 탄소섬유로 만들어져 앞서 설명한 아킬레스 건 역할을 했습니다. 스프링 망은 모터 배터리에서 나오는 힘을 두 배로 분출되게 만들어 주었죠.

 

실제 다리 같은 의족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지 30여년이 지난 2014년, 허는 의족을 한 층 더 개량해 보스턴 테러로 다리를 잃은 댄서를 다시 춤추게 만들었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이를 바이오닉 의족이라고 부르는데요, 바이오닉은 생물학과 전자공학을 결합한 말로 생체공학을 의미합니다.

 

휴 허는 이제 인체 회복 그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더 빠르고 튼튼하게 만들어 줄 ‘외골격’ 장치에 관심을 쏟고 있죠. 외골격은 생체역학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는 50년 안에 자동차 없이 증강된 몸 만으로 먼 곳을 여행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 날개를 달아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장치를 신체의 일부로 만드는 신경체화설계(neuro embodied design)를 통해 구현 가능합니다. 마치 SF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 같지만, 2018년 ‘팀 사이보그’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구현되었습니다.

 

2018년, 짐 유잉(Jim Ewing)이라는 남자는 케이맨 제도 절벽 15m 아래로 떨어져 치명상을 입고 발목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짐은 어린 시절의 허처럼 다시 등반을 하길 원했죠.

 

허는 ‘팀 사이보그’ 프로젝트를 통해 짐이 선진적인 하지절단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뇌와 의족이 상호작용할 수 없었던 기존의 수술법과 달리, AMI 수술법은 의족에 붙은 껌딱지도 알아차릴만큼 뇌와 정교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짐 유잉은 사고가 난 절벽으로 가 암벽등반에 성공합니다.

 

석고의족이 신경체화설계로 발전하기까지 의족은 수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의족이 편하고 가벼워질 때마다 그에 따른 재료도 함께 바뀌었죠.

* 의족의 변천사

석고→알루미늄+가죽+고무→알루미늄+폴리우레탄 유압장치→알루미늄+실리콘+탄소섬유스프링→기존재료들+사람 신체 자체(AMI)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재료연구소에서는 이미 의족에 사용되고 있는 원천재료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금속, 분말, 세라믹, 표면기술 그리고 복합재료를 다루고 있죠. 휴 허의 바이오닉 의족이 외골격으로 발전함에 따라 재료연구소가 함께할 수 있는 미래산업 역시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