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타임을 잡아라! 수십년 내에 인류 문명을 뒤흔들 위기가 몰아친다│대변동(Upheaval) 위기, 선택, 변화│재레드 다이아몬드│핀란드, 독일 역사, 세계대전
인류문명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 평가받으며 1998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한 책 『총, 균, 쇠』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책을 간략히 정리하면 ‘자연환경’이 인류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해왔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문명을 다룬 책 몇 권을 추가로 기술하다 몇 년간 휴지기를 가졌습니다. 그러다 올해 5월, 책 『대변동』을 출간하면서 수십년 안에 인류 문명을 뒤흔들 위기가 몰아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지금이 위기를 해결할 골든 타임이라고 주장하죠.
다이아몬드 교수가 말하는 미래의 위기는 무엇일까요? 그는 미래의 위기를 네 가지 유형으로 요약합니다. 핵무기 폭발, 기후변화, 세계적 자원 고갈, 불평등 위기가 그것이죠.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만 해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발사 가능성을 목전에 두고 살고 있으며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에 대한 끊이질 않는 논란에 결국 폐쇄조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앞서 짚은 상황들은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 중국, 유럽 국가들도 겪고있는 이야기이죠.
책 『대변동』은 미래의 위기에 미리 대응하자고 주장합니다. 위기란 갑자기 발생하기 보다 과거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며 점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다이아몬드 교수가 정의한 네 가지 위기가 마냥 먼 미래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근본 원인이 지금도 겪고 있는 자원부족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죠.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우리는 이미 일어난 문제도 해결할 줄 몰라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미래의 위기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12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방법은 국가나 사회의 위기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저는 12가지 방법을 성격에 따라 다시 5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1) 국민과의 합의, 2) 선택적 변화, 3) 다른 국가로부터의 지원, 4) 국가 정체성 유지, 5)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
이제부터는 책 『대변동』에서 다룬 일곱 가지 국가들 중 두 국가의 역사를 예로 들어 다섯 가지 위기 대응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중 핀란드와 독일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할까요?
여러분은 핀란드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만화 캐릭터 무민이 수도 헬싱키를 걷는 장면이 생각 나는데요, 사실 핀란드는 캐릭터나 관광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나 통신기술과 같은 과학기술 그리고 공업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가입니다. 인구가 600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1인 당 연평균 소득이 6천만원에 달하는 강소국가죠.
핀란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교육에 높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요, 적은 노동인구를 통해 고수익을 창출해야 하다 보니 전체인구 중 공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자연스레 수출 품목도 목재 같은 1차산업 품목에서 최첨단 중장비나 공산품으로 탈바꿈했죠. 핀란드는 불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30~40년대만 해도 1차 산업에 의존하는 가난한 국가였습니다.
핀란드의 경제성장은 1944년 7월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과 맺은 평화협정을 이행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평화협정은 만네르헤임 국경을 호시탐탐 노리던 소련과의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고 나서야 맺어졌습니다. 첫번째 전쟁은 ‘겨울전쟁’이라고 불리며 또 다른 전쟁은 ‘계속전쟁’이라고 불립니다.
핀란드는 소련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당시 소련의 인구는 1억 7천만명이었던 반면 핀란드는 370만명에 불과했습니다. 핀란드는 국경에 위치한 스웨덴이나 독일, 영국, 프랑스가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다들 소련과 연루되길 두려워한 나머지 핀란드는 소련과의 외로운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유럽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 것이죠.
1939년 11월 30일, 핀란드는 첫번째 전쟁인 겨울 전쟁에서 소련을 저지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한 겨울, 소련군이 탱크를 몰고 만네르헤임 국경선에 근접하자 핀란드 장병들은 ‘몰로토프 칵테일’을 이용해 탱크를 폭발 시켰습니다. 통나무 장애물을 설치해 탱크를 멈추었고 포신이나 관측구에 총격을 가했죠. 또한 핀란드 군사들은 스키와 지리에 능했기 때문에 길이 없는 숲에서 진군할 수 있었고, 소련군이 방심한 틈을 타 장군을 사살했습니다.
1940년 3월, 소련은 다시 만네르헤임 국경선을 뚫고 핀란드에 평화협상을 강요하는데요, 핀란드의 상당한 면적을 소련의 해군기지로 사용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핀란드는 이미 한 차례의 전쟁으로 전력을 크게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협상에 서명하게 됩니다. 소련에 쉽게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핀란드 전체를 침략하겠다는 스탈린의 야망이 한 풀 꺾였다는 신호였습니다.
평화협정을 맺은 후 아슬아슬하게 연명하던 핀란드는 주변 국가들의 도움을 더더욱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소련은 독일과 전쟁을 일으키면서 힘이 더 커졌으며, 핀란드에 그나마 우호적이던 국가들은 독일에 점령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핀란드는 살아남기 위해서 소련과 독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핀란드 정부 지도자들은 소련에게 잡아 먹히느니 차라리 독일과 연대를 맺자고 결정 내립니다.
1년 후인 1941년 6월, 독일은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요, 소련은 어쩐지 독일이 아닌 핀란드에 폭탄을 터트립니다. 도시를 폭격 당한 밤, 핀란드 정부는 이를 갈며 다시 소련과의 전쟁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이 후 일어난 전쟁을 ‘계속전쟁’이라고 부르는데요, 악에 받친 핀란드는 10대부터 64세까지 거의 모든 남녀를 모병했습니다. 수도 헬싱키에 위치한 히에타니에미 묘지에는 두 차례 전쟁 이후 수습한 장병의 묘비만 3천개가 세워져 있을 정도로 가혹한 전쟁을 치뤘습니다.
결국 만네르헤임 선을 되찾은 핀란드는 중립관계를 유지하면서 소련과 독일 두 국가의 전쟁을 지켜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3년 뒤인 1944년 6월, 핀란드는 다시 소련에게 국경을 공격 당합니다. 핀란드 지도자는 러시아의 수도로 날아가 평화협정을 제안하는데요, 소련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합니다.
① 계속전쟁 이전에 맺었던 첫번째 평화협정 재이행
: 만네르헤임 국경선과 핀란드 남부 해안의 해군기지 반환
② 핀란드 항구와 니켈 광산 요구
③ 핀란드 북부지역 라피주에 주둔한 독일군 20만명 즉각 추방
④ 전쟁 배상금 3억달러를 6년 안에 소련에 배상
굴욕적이긴 했지만 핀란드는 다시 한 번 평화협정에 서명하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두 번째 평화협정은 핀란드가 강소국가로 성장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배상금을 갚기 위해 공학자를 양성했고 고수익 수출품을 제조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죠. 정부는 평화협정 후에도 소련과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시도하며 신뢰를 얻었습니다. 또한 언론사들이 소련을 비난하지 않도록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기도 했죠. 국민들도 국가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따랐습니다.
독일에 붙었다 소련에 붙었다 하는 핀란드의 모습은 옛 전래동화에 나오는 박쥐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무런 동맹국도 없던 핀란드의 역사를 이해하게 된다면 살아남기 위해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입니다. 핀란드인들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도 국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정체성 중 하나는 남녀노소가 평등하다는 주의인데요, 얼마 전 세계 최초로 34세 여성 총리 ‘산나 마린’을 배출하면서 세계적인 귀감이 되고 있죠.
독일은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즘을 통해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으며 주변국을 도발했습니다. 전쟁 후 독일은 동맹을 맺었던 일본과 달리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사과할 줄 알았습니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 수용소가 있는 폴란드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나치에 가담한 일반인들에 대한 재판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독일은 세계대전 이후에도 주변국과 신뢰관계를 쌓으며 경제대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핀란드와 독일은 위기에 대응하는 5가지 방법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는 점입니다. 핀란드의 지도자 파시키비와 케코넨 그리고 독일의 브란트는 지킬 건 지키되 굽힐 줄 아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며 주변국과 신뢰를 유지하였습니다. 책 『대변동』은 2020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우리가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감히 평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