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알지 않아도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세상│복잡하지만 단순하게(Simply complexity)│닐 존슨(Neil Johnson)│복잡계이론/창발현상/알고리즘/통계물리학
세상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나름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국가들조차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고 허둥지둥대자, 몇몇 사람들은 참담함에 아예 귀를 덮고 눈을 가리고 있으며, 몇몇 사람들은 늦었더라도 제대로 대응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복잡계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앞선 두 유형의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들은 이미 발생한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위기를 정확히 예측하고 싹을 잘라버리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1984년 설립된 미국 산타페 연구소는 인류차원에서 복잡계 이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전세계적인 위기가 발생하기 전,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원인을 찾아 싹을 잘라내는 방법을 연구해온 것이죠. 연구자들은 실생활에서 전쟁상황까지 위기와 관련한 데이터들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매우 복잡해보이지만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상은 마치 프랙탈 같은 기하학 패턴을 그리며 굴러가고 있던 것입니다.
책 ‘복잡하지만 단순하게’의 저자 닐 존슨 역시 복잡계 이론 연구의 명맥을 잇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닐 존슨은 현재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요, 세상의 보편적인 패턴을 발견하고 싹을 잘라내기 위해 여러 학문 분야들 간의 융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분야는 양자물리학, 생명공학, 컴퓨터공학, 재료공학, 전자공학, 경제학, 경영학 심지어 인류학까지 넘나들고 있죠. 복잡계 이론은 최근들어 주목받고 있는 학문 분야로, 책은 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을 정의하는 데에 페이지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복잡계 이론이란?
복잡계 이론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행위자들 사이에 늘 복잡성이 나타난다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복잡성이란 무질서한 세상이 사실은 꽤나 질서있게 굴러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행위할 수 없는 뒤엉킨 양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죠. 따라서 여러 학문 분야로부터 융합한 정보들을 초(超)연결한 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정보 속에는 물질 속 양자를 포함해 인간의 두뇌와 같은 신체 정보도 포함됩니다. 이 초연결상태를 알고리즘 혹은 네트워크라고 부릅니다.
되먹임 현상
세상이 굴러가는 패턴을 이해하려면 우선 행위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신체, 식물, 바이러스, 박테리아, 양자, 대기 등과 같은 행위자들은 늘 0과 1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퇴근 후 노래방을 가는 결정과 가지 않으려는 결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두 선택지를 각각 1과 0으로 두고 선택해야 하는 경우 행위자는 과거의 기억, 그리고 가짜뉴스를 포함한 각종 보도로부터 영향을 받는데요, 만약 노래방에서 신종 바이러스에 전염됐다는 뉴스를 본 행위자라면 집으로 가는 0번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를 되먹임 현상, 영어로는 feedback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무엇인가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되먹임 현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이 패턴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되먹임 현상 때문입니다. 되먹임 현상은 사람들을 군중과 반군중 양극단으로 나눕니다. 노래방에 가려는 세 사람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세사람 모두는 노래방에 두 명 이상 있으면 안된다는 정보를 들은 상태입니다. 노래방에 몇 명이나 올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한 명은 노래를 부르러 가겠다는 1을 선택하였고, 한명은 중립인 0.5를 선택하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절대 가지 않겠다는 0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들의 선택을 평균 내보면 그래프와 같이 U자모양을 보입니다. 나름 개성있게 한 선택이 점점 보편화되어 양극화 패턴을 보이는 것이죠. 이 현상을 창발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창발현상, 복잡한 세상 속 보편성
창발현상은 이전에는 없었던 유일무이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말합니다. 감염병이 전세계로 퍼지는 팬데믹 현상이나 주가가 폭락하는 현상도 이 경우에 해당하죠. 그래프로 보면 창발현상을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창발현상을 쉽게 예측하지 못합니다. 빙산을 구성하는 물 분자의 성질을 아무리 잘 이해한다고 해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할 것까지 예상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0과 1로 디지털화하고 데이터를 계속 쌓아나가다 보면 세상은 늘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전쟁과 테러에도 창발현상이 발생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구급차 운전병으로 일했던 루이스 리처드슨은 1820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의 사상자 수를 집계해보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공격의 세기에 따라 사상자 수의 평균값이 미리 정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정규분포 그래프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집계를 분석해 본 결과, 공격의 세기는 사상자 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쟁의 횟수가 늘수록 사상자 수가 적어지는 창발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루이스의 연구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아 보이는 전쟁 혹은 테러가 하나의 수학적 법칙, 창발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양자컴퓨터의 역할
초(超)연결을 통해 되먹임 현상을 유도하고 창발 현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양자컴퓨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터는 일반적인 컴퓨터와는 달리 정보가 0이나 1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데요, 정보들은 0과 1 두가지 선택지를 다 가지고 있다가 되먹임 현상에 따라 0과 1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누가 통제하지 않아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오류를 일으키는 양자컴퓨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기들끼리 오류를 상쇄해 정상 컴퓨터처럼 기능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비틀기와 백신접종
양자컴퓨터를 통해 창발현상 패턴이 쌓이고 쌓이면 위기의 싹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싹을 자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틀기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전문가 수준으로 상세히 알 필요가 없어집니다. 단지 네트워크의 하부를 살짝만 비틀어주면 됩니다. 또한 몇 가지 정보들을 백신접종하듯이 추가로 입력해주면 위기가 터지기 직전 싹을 잘라낼 수 있습니다. 핵심은 싹 자르기를 ‘언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차 선로에 취객이 누워있어 경로를 우회해야 하는 경우, 너무 빨리 방향을 바꾸면 열차가 탈선할 수 있겠지만 타이밍에 맞춰 경로를 바꾸면 열차도 취객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복잡계 이론을 세상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비둘기 로봇을 만들어 로봇 스스로가 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습니다. 새의 날개를 구성하는 깃털 하나하나가 경쟁적으로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은 새가 바닥에 떨어지려고 할 때 약간만 개입하여 다시 스스로 날게하도록 만들면 됩니다. 이를 생체모방기술이라 부르며, ‘새의 감각’ 리뷰 영상을 참고해 더 흥미로운 사례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이 외에도 발작을 중지시키는 두뇌 제세동기, 종양에 영양분을 차단하는 암 치료, 관절염 같은 면역계 질환 치료, 주가폭락 방지, 스마트재료 설계, 미세먼지 통제, 기후 통제와 같은 응용분야들에 복잡계 이론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홍수나 쓰나미같은 대형자연재해는 한 번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어 미리 대응할 필요가 있는데, 대기에 무해한 가스 입자를 분사하여 구름 모양을 바꾸고 비를 인공적으로 내리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비틀기와 백신접종은 권한을 가진 집단들 간의 합의된 의견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제는 방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날이 갈수록 전세계적 협업능력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연결을 하는게 마냥 좋을까?
옥스퍼드 대학과 홍콩 중문대학의 연구자들은 모든 경쟁상황을 연결시키는게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에 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공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체정보와 같은 사적인 정보까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위 부분에만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정보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복잡계 이론을 적용하기 전에 과연 어떤 편익과 위험이 있을지 예상해야만 했습니다.
두 대학의 연구자들은 연결의 결과가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쁜 경우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연결이 공정성을 띄냐, 효율성을 띄냐에 있어서는 ‘자원경쟁이 얼마나 심하냐 그리고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느냐’에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원경쟁이 치열한 인구집단 구성원들 간에 연결을 높이면 양극화가 심해져 평균적인 성공률이 떨어진 반면, 자원이 넉넉해 경쟁이 덜 치열한 인구집단 구성원들 간의 연결을 높이면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공은 못해도 평균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개인의 역할
지금까지 복잡계 이론이 무엇인지 알아보긴 했지만 여러 학문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인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론은 마냥 공상과학소설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연구중인 분들과 미래의 학자가 될 학생들이 복잡계 이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면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생할 인류의 위기를 미리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기 전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키워드들을 영상 더보기에 정리해 놓았으니 참고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도서 📚
영상에서 다룬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해달책방의 책 리뷰영상을 참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인류 진화과정에서 일어나는 창발현상 :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 경제성장은 외생적일까 내생적일까? : 지식경제학 미스터리
• 세상에 규칙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 틀리지 않는 법
• 식물계의 네트워크에 대해 알고 싶다면? : 오버스토리
•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모방하는가? : 새의 감각
• 투명한 유리 속에서 살펴본 양자역학 : 사소한 것들의 과학
📚키워드 📚
자기조직화, 거듭제곱근 법칙(멱함수), 동역학, 프랙탈, 비선형, 군중-반군중현상, 엑시톤, 양자역학,정규분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