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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키신저의 세계질서를 읽고 바라 본 브렉시트│Henry Kissinger : World order│외교│정치│세계대전│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본문

책 리뷰

헨리키신저의 세계질서를 읽고 바라 본 브렉시트│Henry Kissinger : World order│외교│정치│세계대전│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SEA OTTER'S BOOKSHOP 2019. 5. 23. 22:45

* 이번주 책 리뷰는 영상이 아닌 텍스트로만 제공됩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오더를 외치는 이 남자는 영국 하원의원을 이끄는 존 버커우 의장입니다. 스탠딩 코미디장 같은 하원은 그가 소리를 질러야만 겨우 진정될 정도로 혼돈의 카오스 상태였습니다.
 
 하원의원들은 2016년부터 표류 해 온 브렉시트에 관한 대안을 의회투표에 부치고 있었습니다. 브렉시트에 관한 대안을 정부가 아닌 의회가 주도하는 국면으로 바뀐 건 올해 초부터 였습니다. 4월 초까지 나온 12개의 대안 중에는 브렉시트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하는게 어떻겠냐는 안과, 관세동맹이 다 끊길 걸 각오 하고서라도 브렉시트를 밀어 붙여야 한다는 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원의원들은 최적의 대안을 찾으려고 했으나, 모든 대안이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한 관계로 부결되었습니다.
 
 의향투표가 부결된건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최종담판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두 차례 연기된 바가 있는 최종 담판 날짜를 다시 한 번 연기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유럽연합은 브렉시트 합의를 올해 10월 말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영국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크기도 하지만, 브렉시트가 세계질서를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세계의 열강들은 유럽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과 같은 협력기구를 통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유럽은 30년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균형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30년 전쟁이 끝나고 1648년 유럽 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세계질서라고 불릴만한 최초의 합의였으며, 지금까지도 각 국가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국가도 다른 국가들을 위협할 만큼 커지지 않아야 한다는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유럽은 서로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는듯 했습니다.
 
 세계질서에 대한 우려 속에 영국 정부와 하원 그리고 국민들도 브렉시트가 자국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닫고 있는 듯 해 보입니다. 각 국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만든 유럽연합이 사실상 영국의 주권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국민들은 브렉시트에 찬성했었지만 영국 내 분열과 의회민주주의의 한계(스코틀랜드 독립투표문제)라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딱드리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건 불과 3년 전부터이지만, 유럽질서에 통합되기를 거부하는 영국의 정황은 이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8월,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과 미국의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 호에서 회담을 개최하였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다른 어떤 유럽국가보다 미국의 협력이 영국의 승리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고, 이들은 8개의 공동 원칙에 합의하였습니다. 두 국가가 아닌 두 사람의 만남에 더 가까웠던 이 회담은 미국이 4개월 뒤에 연합국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만든 도화선이었으며 추축국이었던 독일, 일본,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시 중 윈스턴 처칠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일혈로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했던 루스벨트의 뜻을 이어받은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트루먼 대통령의 마셜플랜과 나토창설은 국제 질서를 발전시키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이 두 전략은 영국이 유럽회원국 보다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48년에 계획된 마셜플랜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을 대상으로 미국이 경제원조를 하겠다는 정책이었는데, 경제 원조를 받기 위해서는 유럽경제협력기구(OEEC)에 가입해야 했습니다. 1961년에 미국과 캐나다가 합쳐져 지금의 OECD가 되기 전까지, OEEC는 경제원조를 받기 위한 기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다음해인 1949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를 창설하였습니다. '어느 회원국이든 무력 공격을 받으면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강력한 조약 아래, 29개 국가들은 70년째 나토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하는 조약을 지켜야 하지만, 이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그 외 3개국 뿐입니다.

 영국과 미국간의 끈끈한 신뢰 관계를 살펴봤으니 다시 유럽연합 얘기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의 경제가 점차 회복되자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6개 국가는 1957년에 영국 없이 ‘로마조약’을 맺었고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출범했습니다.
 
 회원국들은 관세동맹을 체결하여 관세의 부담없이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었습니다. 비회원국에서 수입한 물품이라도 한 번 관세가 부여되면 회원국 간에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프랑스 공장에서 조립하고 이탈리아에서 완제품으로 만든다고 해도 관세는 딱 한 번만 내면 됐습니다.

 단일시장은 더 시간이 흐른 뒤 ‘1992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으며 상품뿐만 아니라 자본, 서비스, 노동력을 의미하는 4대 교역 요소를 회원국 간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개념입니다.


 자존심 때문인지 영국은 유럽경제공동체가 출범된 지 3년이 지나도록 가입하지 않았고, 총 7개국이 참가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영국이 주도한 연합이 큰 활약을 하지 못하자, 1961년에야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샤를드골은 “영국은 미국을 위한 트로이 목마”라고 비판하며 영국의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실제로 영국은 유럽의 통합에 기여하고자 했다기 보다, 당장 먹고 살 길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입을 원한 듯 보였습니다.
 
 주변국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영국은 1973년에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했습니다. 이미 공동체 내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알게 된 영국은 가입한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유럽경제공동체에서 탈퇴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국민투표에 부친 적이 있었으며, 1993년 공동체가 유럽연합으로 확장됐을 때도 유로화 도입에 반대하며 독자적으로 파운드화 체제를 유지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브렉시트의 전조현상을 보인 것입니다.


 미국은 브렉시트를 찬성하고 나섰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유리하도록 무역협상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리슐리외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400년 전에 일어난 30년 전쟁 때 중유럽의 혼란을 이용했던 프랑스의 리슐리외 말고도,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중소국가들의 통합을 막거나 방관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면 영국은  미국의 경제적 속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 역시 브렉시트로 인해 큰 득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선 영국이 떠안고 있던 유럽연합의 분담금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탈퇴하는 즉시 다른 회원국의 분담금이 높아지게 됩니다. 또한 유로화의 위기와 난민문제를 겪으며 회원국들은 불만을 축적해왔고, 영국의 뒤를 이어 연쇄 탈퇴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유럽연합을 긴장시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어떤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올해 4월 초, 유럽연합은 이나트바(INATBA)라는 블록체인 응용 국제협회를 출범했습니다. 단일시장을 구성하는 4대 교역 요소 중 하나인 자본의 범위를 블록체인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기존 유로화는 다른 통화와 마찬가지로 환율에 영향을 많이 받아 왔는데,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화폐는 환율 문제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전례없이 방대한 테스트 데이터를 축적해오면서 국제 블록체인 표준을 이끌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유럽연합과 같이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신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책 세계질서의 저자인 헨리 키신저는 인공지능에 주목하고 있는데, 세계질서의 1차혁명은 화약이고 2차는 핵이며 3차는 인공지능이 될 것이라 전망 했습니다. 그는 국제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잠재적으로 사이버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인류는 이미 수도 없는 전쟁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요소들이 균형을 깨뜨리는 모습을 지켜 봐 왔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들 역시 세계질서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으며 이제는 소수의 천재 기술자들이 국가를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기술 앞에서 그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합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시점입니다.

헨리 키신저는 지식과 지혜 그리고 정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에 역사와 지리를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는 인간이 쌓은 지식을 통해 발견되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책 읽기를 강조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비슷한 사건들을 엮어볼 수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글의 문체는 독자가 개념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며, 인터넷의 데이터 그 이상의 의미를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책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문체는 독특한 뉘앙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몇 차례 다시 읽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베테랑 외교인 헨리 키신저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들이 있다면 시간의 여유를 두고서라도 꼭 읽어보길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