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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정의하는 개인주의란?│개인주의자선언 │문유석판사 │사회이슈 본문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갈등으로 시작해 8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30년 전쟁’ 이후, 사람들은 종교만으로는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을 수 없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651년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사람들 간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절대 권력을 의미합니다. 절대권력은 주권을 발휘해 구성원들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 해줍니다. 오늘날 일부 국가에선 약간 변질되기는 했지만, 리바이어던이라는 개념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문유석 판사는 리바이어던을 ‘집단’의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집단’, 예를 들면 기업, 가정, 학교가 거꾸로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바닷괴물이 되어 개인을 삼켜버릴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혐오’를 외치는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이 개인주의자임을 당당히 선언합니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선 거의 모든 집단이 개인을 집어삼킨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학벌, 직장, 직위, 사는 동네, 차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우리들은 일렬로 줄 세우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두가 1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박탈감에 시달리며 뒤쳐지는 삶을 살까봐 두려움에 떨곤 합니다.
심지어 나름 고위직인 판사 세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은 ‘차관급 예우’를 받기 위해 야근을 불사했습니다. 근무기간만 같으면 동일한 수준의 보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랜저 관용차를 몰고 출 퇴근때마다 모시러 오는 기사님이 차관급 예우의 실체였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판사의 직위 체계를 아예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흔히 사회문제를 언급하면 ‘환경 탓이나 하는 투덜이’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개인이 변화해야한다는 것이죠. 요즘 청년들에게서도 이런 태도를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은 엄격하게 스스로를 통제하며 자기계발에 매진합니다. 적어도 나는 투덜대지 않고 뭐라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문유석 판사는 자기계발을 활발하게 하는 학생일수록 사회적약자들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의 고통은 철거를 예상하지 못한 그들의 잘못이며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어렵게 시험을 보고 정규직이 된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입니다.
청년세대부터 계층을 나누는 다른 사례 중 하나는 바로 대학교 ‘과잠’입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 학과, 학번 그 자체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성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를 흉내 내는 것입니다.
이들 중 사회적약자나 다른 집단에 포용력을 보이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청년들이 더 눈에 띄는 이유엔 고용 없는 저성장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한 몫 합니다. 청년들은 사회문제에 마냥 관심을 쏟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악착같이 공부해서 학벌을 성취하고 높은 경쟁률을 뚫어 직장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즘 들어 미래에 큰 희망이 없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선배들을 통해 특정 집단이 개인을 영원히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죠. 이를 깨달은 청년들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여행 혹은 맛집 탐방에 만족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적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의 행복만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문유석 판사는 지금의 청년세대가 삼십대, 사십대가 되어도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청년들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부터 불행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시간이 흘러 불행을 극복하지 못한 채 사회적약자가 된 친구들에게 ‘노오력을 하지않았기 때문’이라고 말 한다면, 사회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 영상인 책 ‘생각에 관한 생각’ 리뷰에서 인간은 비합리적 결정을 자주 내린다는 사실을 알아 보았습니다. 심리학뿐 아니라 진화론과 뇌과학 분야에서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이 내린 가장 편안한 결론이 고립주의, 유아적인 이기주의 그리고 집단주의가 될 수 있음을 의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문유석 판사가 정의하는 개인주의는 ‘합리적인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되더라도 공정한 규칙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도 타협할 줄 아는 사람, 더 나아가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이 이상적인 개인주의자들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법관으로서 그가 개인주의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바이어던을 만든 사회계약, 즉 헌법의 질서는 서로의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개인을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문유석 판사는 평소에도 말을 내뱉기 전에 ‘내가 하려는 말이 참말인가, 정말 필요한 말인가, 과연 친절한 말인가’ 를 곱씹어 생각 한다고 합니다.
평소에 무심코 했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폭언이 될 수 있으며, 불편해서 했던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겐 갑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회사업무도 심지어 노는 것도 너무 바쁘다면 문유석 판사처럼 일상생활에서부터 합리적 개인주의를 실천해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