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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는 5가지 방법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Kolk)│뉴욕타임스 베스트/스테디셀러 본문

책 리뷰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는 5가지 방법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Kolk)│뉴욕타임스 베스트/스테디셀러

SEA OTTER'S BOOKSHOP 2019. 11. 23. 22:28

https://youtu.be/CeqAVCqDNwE

당신은 지금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습니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이 길의 폭은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수준입니다. 담장 높은 집이 만든 커브 길을 돌자, 당신을 향해 시속 130km로 달려오는 차 한대가 보입니다. 이 때 당신의 기분은 어떨 것 같나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다양하게 반응합니다. “겁이 날 것 같은데요?”, “무서워서 몸이 굳어버릴 것 같아요.”,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르지 않을까요?” 보통 자신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코 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음…잘 모르겠어요. 피하겠죠.”라며 무덤덤하게 대답합니다.

 

정신병리학적으로 이들을 ‘감정인지불능증 환자’라고 부릅니다. 감정인지불능증 환자들은 과거에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여기서 충격적인 상황이란 신체 및 정서적 학대, 데이트 폭력, 사고현장 목격을 말합니다. 비슷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은 이들은 감정을 숨기는 게 표현하는 것보다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부정적인 경험을 타임캡슐에 담아 몸 속 깊숙이 묻어두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 타임캡슐을 묻어 두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데요, 이 상황을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살던 사람들은 타임캡슐과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주변에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고 욕설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이런 행동을 왜 하는지는 본인도, 주변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사람들과 불화를 쌓죠.

 

이들의 심장과 근육 그리고 장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폐위신경(미주신경)으로 연결된위, 장, 심장은 인간의 감정표현을 담당하는데요, 심장이 부서지는 느낌,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반복되면 이들은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을 찾아 상담을 받습니다. 환자의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필요가 없는 의사들은 푹 쉬고 진통제를 먹으라는 처방만 내립니다. 환자들은 고통을 마비시키고자 폭음, 폭식, 마약중독에 빠지게 되고 자해까지 하는데, 심하면 자살을 기도합니다.

 

‘몸은 기억한다’의 저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겉으로 보이는 상처, ‘외상’을 치료하는 데에 그치기 보다는 저마다 몸 속에 묻어 둔 타임캡슐을 꺼내어 똑똑히 바라보게 하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는 아동학대와 아동방치 문제가 공중보건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하는데요, 아이들은 양육자가 돌보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후 2년이 채 안된 상태에서 학대와 방치를 경험하면 성인기 초반에 해리성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해리성 증상은 뇌에서 감각을 담당하는 영역의 스위치가 아예 내려가 정신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증상입니다. 이들은 거울을 봐도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베셀과 연구진들이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에서 자란 유아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봤더니 이 중 300명은 부모와 혼란애착관계를 보였습니다. 혼란애착은 부모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관계로 부모가 스스로에게 너무 빠져 있거나 자신을 양육해달라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 발생합니다. 보통 아이들은 부모를 돌볼 능력이 없는데요, 아이에게 분노와 좌절감을 느낀 양육자는 학대를 시작합니다.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이들의 뇌를 살펴보면 중뇌수도관 주위가 강하게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소리에 지나치게 깜짝 놀라고 특별할 것 없는 상황에 경계심을 보이죠. 높은 수준의 폭력을 당한 아이에게 차를 수리하는 아빠와 지켜보는 두 아이를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아빠는 차에 깔릴 것이고 아이는 손에 든 망치로 아빠 머리를 깨부숴버릴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아예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저자가 정신클리닉에서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을 지켜보니, 진단과 약 처방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우울증, 적대적 반항장애, 소아불안, 틱장애 등의 다양한 진단명을 주홍글씨처럼 새기게 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주고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더라면 수억 달러 규모의 약값, 치료비 등 사회적 손실을 아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병원들은 왜 아이들의 진짜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일까요? 전세계 정신클리닉에서는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제시한 DSM이라는 진단 가이드라인을 참고하고 있는데요, 현재 DSM-5버전까지 나온 이 진단법은 정체를 모르는 정신질환에 ADHD, 우울증, 반항장애와 같은 진단명을 붙여서 병원 운영과 수익 향상에만 집중하게 만듭니다.

 

저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현재의 DSM 진단법이 매우 임의적이라고 지적하며 새로운 진단법인 ‘복합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TSD)’를 고려해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베셀은 Complex PTSD를 DSM에 싣기 위해 애착관계에 관한 연구를 40년에 걸쳐 진행 했으나 미국정신의학협회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다소 비과학적이라는 이유였지만, 베셀 반 데어 콜크가 제시한 진단명과 회복방법에 주목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저자는 트라우마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책에서 다룬 여러 회복 방법 중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하는 방법

1)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트라우마 기억은 갈기갈기 조각 나 있습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선 조각난 이야기를 통합해야 하므로 EMDR 치료를 권장합니다. 끔찍했던 기억을 굳이 꺼내는 것은 환자가 다시 기억을 떠올리더라도 공포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한 과정입니다.

 

환자와 상담자는 45도 각도로 마주보는데요, 상담자는 손가락을 뻗고 좌우로 움직이며 말합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마음속에 유지하면서 눈으로 제 손가락을 따라오세요” 이제 환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들 간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상담자는 손을 내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라고 말한 후 무슨 기분이 드는지 수시로 물어보는데요,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환자는 이 기억들이 과거의 일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더라도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안정감을 되찾죠.

 

이때 상담자는 환자의 트라우마 기억을 억지로 말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트라우마 이야기를 말한다고 해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분인지 스스로 인지하게 만드는게 핵심입니다. 영상 더보기란에 EMDR영상을 링크로 걸어 놓았으니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뉴로피드백

뇌파패턴을 바꿔 뇌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사람에 따라 트라우마를 단 2회 만에도 100% 치료할 수 있습니다.

 

3) 요가/스트레칭/마사지

요가를 통해 잃어버렸던 몸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칭 방법으로는 펠든크라이스, 마사지로는 두개천골요법이 있습니다.

 

4) 연극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말로 내뱉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5) 글쓰기

글을 쓰면 자신이 그 때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치료방법들은 충격적인 일을 마주하더라도 스스로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이들은 온 몸으로 다시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감과 명랑함, 창의력을 회복합니다. 이유없이 몸이 아프거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분들이 주위에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혼자서만 끙끙 앓고 있던 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