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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경쟁에 등 터진 노동자, 살릴 방법은?│무역의 세계사(How Trade Shaped the World)│윌리엄 번스타인│관세장벽/자급자족/민족주의/보호무역/자유무역 본문
무역경쟁에 등 터진 노동자, 살릴 방법은?│무역의 세계사(How Trade Shaped the World)│윌리엄 번스타인│관세장벽/자급자족/민족주의/보호무역/자유무역
SEA OTTER'S BOOKSHOP 2020. 6. 2. 17:48
1929년, 미국의 몇몇 산업들은 값싼 외국산 제품에 밀려 내리막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광산 기술자 출신인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경제 대공황을 돌파하고자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합니다. 1930년 6월 17일 후버가 서명한 법안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제품에 평균 관세를 60퍼센트, 최대 400퍼센트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관세란 국가가 외국에서 수입한 제품에 매기는 세금으로써, 경쟁력이 덜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가의 금고를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후버는 여기서 더 나아가 ‘비관세장벽’도 설치했습니다. 비관세장벽이란 관세가 아닌 다른 보호조치를 의미하는 말이죠. 당시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수입한 코르크에 원산지 표기를 요구함으로써 불필요한 제조공정을 추가했고 제품의 가격을 높였습니다. 오늘날 미국 역시 비관세장벽을 설치해 자국산업을 보호하고 있는데요, 특정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제품의 가격이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돕거나, 수입물량 자체를 제한해버리는 쿼터제를 실시하기도 하죠.
허버트 후버가 서명한 이 법안은 그를 지지하던 두 공화당 의원의 이름을 따 스무트-홀리 관세법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서명으로부터 3년이 지난 1933년부터는 세계 경제가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자급자족, 민족주의라는 특징을 보이게 되죠.
이를 우려스럽게 지켜보던 한 의원이 있었습니다. 테네시 동부의 어느 담배 농장 출신인 코델 헐이었죠. 그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믿는 자유무역론자였습니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란, 직접 버터를 만드는 시간에 더 가치 있는 것을 만들 수만 있다면 수입버터의 맛이 별로더라도 값싸게 수입하는 것이 낫다는 이론입니다. 변호사가 목공보다 집을 더 잘 짓는다고 하더라도 변호사 선임비가 더 높다면 본업에 충실하는게 더 나은 상황과 같죠.
코델 헐은 민주당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거치다 보호무역주의가 한창이던 1933년, 민주당 출신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취임 후 국무부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공화당의 거센반발을 우려한 헐은 대통령에게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점진적으로 완화해가는 방법을 제안하였으며 외교적으로도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후버 대통령 시절, 전세계적으로 극렬한 반미주의 운동을 일으켰던 과오를 보완하기 위해서였죠. 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무트-홀리라는 높은 관세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긴 쉽지 않았으며 이는 제 2차 세계대전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세계 무역은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말, 코델 헐은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하였으나 그의 자유무역 정신은 다음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미 국무부가 발간한 보고서인 「무역 및 고용의 확대를 위한 제언」을 보면 코델 헐, 데이비드 리카도, 리처드 코브던, 애덤 스미스와 같이 자유무역을 주장하던 학자들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보고서 「제언」의 발간 이후,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 아메리카의 평화)를 주창하며 미국 주도의 국제무역을 이끌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고수하던 미국이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유무역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스톨퍼-새뮤얼슨 법칙을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세 가지 생산요소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는 자유무역이 유리하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보호무역이 유리하다는 이론인데요, 미국은 세계대전을 거친 후 경제적으로 승기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무역을 꺼릴 이유가 전혀 없었죠.
그래서 그런지 미국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인 GATT와 GATT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세계무역기구 WTO의 가입국들과 함께 5만여 개 품목에 대해서 관세를 인하하는 협상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 자유무역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1. 보호무역주의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존재합니다.농업과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GATT와 WTO의 제재를 받지 않고 있죠.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높은 관세와 비관세장벽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농업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며 513퍼센트라는 높은 관세와 연간 1조 49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었죠. 스톨퍼-새뮤얼슨 법칙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토지가 희소하기 때문에 보호무역을 선택하는게 현명해 보이는데요, 불과 몇 개월 전인 2019년 말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갑자기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WTO 분담금을 인상하겠다며 압박했죠. 이유는 이랬습니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둔 트럼프는 농민의 민심을 잡기 위해 미국 농산물의 해외수출을 늘려야 했고, 한국을 포함한 중국·대만·싱가포르·일본·UAE·브라질·멕시코·캐나다에 각종 압박을 넣어 관세 및 보조금 혜택을 축소했습니다.
사실 미국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농업분야를 개방하는 일은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농업은 그동안 최종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비싼 농산물 가격을 지불하도록 만들며 억지로 산업을 끌고왔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 농업 종사자들은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 자유무역의 그림자 혜택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패자(敗者)임을 인정하고 농업을 어떻게 정상화해야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한편, 정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최근 우리나라는 공익형 직불금,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해 농민들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직불금은 토지 면적당 일정금액을 농가에 지원하는 제도이며,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기업이 농가에 투자하는 제도입니다. 에너지 기업이 농가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주거나 식품기업이 농식품을 구매해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에 기부하는 방법을 예로 들 수 있죠.
윌리엄 번스타인이 우리나라의 농업 정책을 듣는다면 이런 말을 해줄 것 같습니다. “자금지원은 농가를 살릴 수 있는 적절한 대응 방법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이 있죠. 시장 상황을 제대로 분석한 뒤 수출에 성공할 만한 제품을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것입니다.” 윌리엄 번스타인은 덴마크 협동조합이 만든 브랜드 루어팍(Lurpak)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루어팍은 농민과 정부가 합심해 수출을 성공시킨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1870년대 후반 북유럽엔 낙농업과 축산업이 성공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냉장설비가 등장했고 철도운송비도 대폭 낮아지면서 관세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죠. 또한 사료용 곡물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유럽 나라 대부분은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보호하기만 했습니다. 스톨퍼-새뮤얼슨 법칙에 따르면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는 자유무역을 하는게 이득인데도 말입니다. 이때 덴마크만이 시장상황을 제대로 캐치하고 유일하게 시장을 개방했습니다.
1882년, 덴마크 서쪽 예딩이란 마을의 주민들은 버터나 크림을 대용량으로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한 후 탈지기계를 공동으로 구매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세 명의 이사를 선출해 운영을 맡겼는데요, 이들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하여 매우 엄격한 위생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합원 각자가 높은 품질의 우유를 많이 공급할수록 이익을 많이 챙겨갈 수 있었죠.
매일 아침 조합트럭이 농가에서 우유를 수거해 공장으로 운반하면, 마을에서 뽑은 숙련 기술자가 탈지기계를 처리합니다. 여기서 생긴 탈지유는 조합원에게 돌려줍니다. 조합원들은 탈지유를 이용해 분유를 만들거나 다른 식품업체에 원재료로 공급하면서 추가 이익을 얻었죠. 가공한 버터를 시장에 판매해보니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1887년 덴마크 동쪽에 위치한 마을의 축산업자들도 예딩 마을의 성공사례를 참고해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들은 자금을 모아 첨단 도축 공장을 세우는데요, 관심있게 지켜보던 덴마크 정부도 조합에 투자하기로 결정합니다. 덴마크 농업부는 최상의 품질을 공급할 수 있는 돼지 품종을 찾기 위해 시험소를 설립해주었죠. 1930년대 초 덴마크의 돼지 무역량은 전 세계 교역량 중 절반인 7억 3100만 파운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낙농 및 양돈 협동조합이 만든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고 수출에 사기를 북돋기 위해 루어(Lur)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엔 버터를 중심으로 한 루어팍(Lurpak)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죠.
미국 주도 자유무역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2. 낙오된 노동자들
여기 자유무역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또 있습니다.나이키 같은 다국적 기업이 개발도상국에서 공장을 설립하더라도 공장 밖 노동자들은 자유무역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죠. 스톨퍼-새뮤얼슨 법칙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노동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모두가 자유무역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론과 완전히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신발·의류·섬유·자동차·철강 산업에 종사하는 저숙련 노동자들도 사실 득보다 실이 더 큽니다. 이들은 다국적기업이 제공하는 노동환경과 임금에 만족할지 모르지만 저숙련 노동자에 머물기 위해 온 시간을 쏟아 붓다보니 고임금을 받는 고숙련 노동자가 될 기회를 잃게 되죠. 개발도상국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낙오된 사람들을 보상을 해줘야만 놓친 기회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들어가는 비용이 아까울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계속 제자리에 멈춰있는 모습을 깨닫게 된다면 놓친 기회가 더 값졌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이 세계에서 어떻게 승기를 잡았으며 다른 국가를 어떻게 통제하려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농민이나 공장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점도 알아보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번스타인이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유무역은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유무역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패자(敗者) 역시 사회보장제도나 협동조합과 같은 대안으로 충분히 살려낼 수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