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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니 곤충으로 변해버린 영업사원│변신│프란츠 카프카│가족/대화/단절/자본주의/돈버는기계/영업사원/현대판우화·동화/문학동네/그레고르잠자/판타지소설/단편소설 본문
잠에서 깨니 곤충으로 변해버린 영업사원│변신│프란츠 카프카│가족/대화/단절/자본주의/돈버는기계/영업사원/현대판우화·동화/문학동네/그레고르잠자/판타지소설/단편소설
SEA OTTER'S BOOKSHOP 2020. 6. 29. 18:48
(악몽을 꾸는 그레고르)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하던 오전 6시, 나는 온 몸을 감싸는 한기에 눈을 떴다. ‘분명 이불을 덮고잤는데 왜 이리 춥지?’ 이불을 끌어올리려 시선을 천장에서 바닥으로 옮기는 순간, 나는 내 몸이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있음을 깨달았다. 혹시 밤새 꿨던 악몽을 여전히 꾸고 있는건 아닐까?
“그레고르! 벌써 여섯시 사십오분이야! 출근 안할거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 상황이 현실임을 증명해주었다.
지난 5년 간 나는 매일 새벽 5시 기차를 타고 출근한 뒤, 기업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해오고 있었다. 상품을 판매하고 받는 수수료는 꽤나 생활에 보탬이 되어주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 혼자 온 가족을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직업이 없는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의 생계가 내 손발에 달려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다음 기차를 타러 떠나야했다. 하지만 나는 침대 위에 뒤집힌 채로 버둥대기만 할 뿐이었다.
다행히 방문을 잠그고 자는 습관 덕에 어머니는 연신 두드리기만 할 뿐, 문을 열진 못하고 있었다. 곧이어 아버지와 여동생도 가담해 문을 두드리며 내 출근을 재촉했다. “일어나는 중이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침대에서 버둥거리던 나는 반동을 이용해 겨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문 앞으로 기어가는 도중에,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이 문을 열어주자 내가 다니는 회사의 지배인 목소리가 구두 발자국소리와 함께 방을 향해 다가왔다. 지배인은 문 앞에서 내가 출근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묻기 시작했다.
“그레고르씨! 새벽 기차를 타지 않은 이유를 해명하시오! 요즘 회사에서 거둔 실적이 그닥 좋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근무까지 태만하면 당신의 일자리를 보장해줄 수 없소!” 나는 문에 기댄 상태로 지배인에게 소리쳤다. “지금 하시는 비난들은 근거가 없습니다! 최근 제가 회사에 드린 주문서 목록을 보지 않으신 모양이죠? 오늘은 몸이 안좋아 늦잠을 잤을 뿐입니다! 여덟시 기차로 출근할 테니 믿고 돌아가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바깥에서 동물의 소리를 듣고 놀라는 사람들)
하지만 그 누구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그건 동물의 소리였습니다.” 지배인은 공포에 가득 찬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어머니는 울부짖으시더니 동생에게 당장 의사를 불러오라며 지시했고, 동생은 현관문도 닫지 않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지배인을 마주하여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해준 뒤, 회사에서 자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자물통에 꽂힌 열쇠를 두 턱으로 잡아 체중을 실었고 문을 여는 데에 성공했다.
열린 문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나는 지배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창밖을 보던 지배인이 고개를 돌렸고 그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지배인의 얼굴이 새하얘지기 시작하더니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현관 밖 계단으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배인을 붙잡기 위해 나선형 계단을 빠르게 걸어내려갔지만 지배인은 내 모습에 질겁하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일어난 지 두 시간도 채 안돼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현관으로 들어서니 어머니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민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는 ‘쉿쉿’ 소리를 내며 지팡이로 나를 몰아냈고, 그 과정에서 옆구리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 방 안으로 집에 넣은 아버지는 문을 굳게 잠궜고, 동생이 불러온 의사를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돌려보내셨다.
동생만이 유일하게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동생은 내가 목숨만이라도 부지할 수 있도록 먹다남은 음식을 문 안에 넣어주었고 가끔 청소도 해주었다. 그렇다고 내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 정도의 강심장은 아니라 동생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가 주었다. 틈이 좁아 몸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하얀 침대시트를 소파에 씌우기도 했다.
하루는 어머니와 동생 사이에 작은 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물론 나에 관한 일이었다. 여동생은 방에 있는 물건들이 내 유일한 취미가 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기’, ‘벽 타고 다니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다며 치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어머니는 그대로 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엿듣고 있던 나는 어머니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물건이 있어줘야 인간이었던 내 과거의 기억들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동생은 가구를 치워야 한다며 계속 고집을 피웠고 어쩔 수 없이 어머니도 가구를 옮기게 되셨다. 텅 비어가는 방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액자에 걸린 여자 그림은 절대 빼면 안되는데…’ 모피로 몸을 감싼 여인을 그린 그림은 내가 군대에서 소위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갖고 있던 그림이라 절대 뺏기고 싶지 않았다. 벽을 빠르게 타고 올라간 나는, 뜨거운 배를 액자 유리 위에 붙인 채 꽉 누르고 버텼다.
어머니는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둘러싸인 내 모습을 보자 소파 위로 쓰러졌고, 동생은 “오빠, 정말 이럴거야!”라며 내게 소리쳤다. 곤충이 된 이후 내게 처음 거는 말이었다. 나는 기절한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옆방으로 가 약을 뒤지다가 여동생마저 놀래키게 되었고, 깨진 유리병에서 흘러나온 약물에 온 몸이 젖어 삭아갔다. 동생은 내가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 방문을 닫아버렸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바닥과 벽을 기어다니다가 식탁 한복판에 떨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찬장에 올려 놓은 사과 몇 알을 집어들더니 내가 있는 방향으로 마구 던져대기 시작하셨다. 몇 번 피하긴 했지만, 결국 사과 하나가 등을 정면으로 맞추었고 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때, 어머니가 속옷바람으로 방에서 뛰어나오시더니 사과를 던지지 못하도록 아버지를 몸으로 막아주셨다.
그날 이후, 나는 사과를 등에 박은 채 방 안에 갇히게 되었다. 텅 빈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유일한 취미인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기’, ‘벽 타고 다니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많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가족들은 저녁식사 시간마다 내 방 문 한 쪽을 열어두었다. 가족이 나누는 대화 정도는 들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어머니는 바느질로 내의를 기워 양장점에 넘겨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바이올린 연주자라는 꿈을 완전히 내려놓고 어느 가게의 점원으로 취직했고, 퇴근하면 속기와 불어를 공부하며 지냈다. 아버지는 은행 안내원으로 취직하셨는데, 집에 와서도 제복을 벗지 않고 지내시는 바람에 금방 꼬질꼬질해졌다.
가족들 모두 새로 직장을 구하긴 했지만, 집안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결국 빈 방 세 곳을 하숙방으로 만들어 털보 세 명을 집 안에 들이기로 결정하셨다. 사내들이 묵을 방을 정돈하기 위해선 쓸모없는 물건 몇 가지를 빼내야했는데, 빼낸 가구와 기타 잡동사니들을 모두 내 방 안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먼지, 머리카락, 실밥, 음식 부스러기를 뒤집어 쓴 채 시간을 보내던 나는, 파출부 할머니가 문을 열어놓은 사이, 거실로 빠져나갔다. 거실에선 동생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고 나는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려 동생에게 다가갔다. 연주를 들으니 여동생을 음악원에 보내려던 계획이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에게 계획을 얘기하려 했지만 그 전에 몸이 바뀌어버리고 만 것이다.
거실에 있는 털보 셋 누구도 내 동생의 연주를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냥 예의상 들어줄 뿐이었다. 성탄절 전에 몸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동생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괴로움이 밀려왔다.
“잠자씨!”
사내 중 한 명이 아버지에게 소리치면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야 내 모습을 발견한 듯했다. 가족들은 깔끔떠는 하숙인들의 눈치를 보며 그럭저럭 잘 버텨왔지만 나로 인해 신뢰관계가 깨져버린 것이다. 하숙인들은 그 동안의 방세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을 것이며 손해배상청구까지 하겠다며 윽박을 질렀고 곧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여동생은 부모님께 선언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요. ‘저것’에서 벗어나야해요! 내쫓아야 한다구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동생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내가 말을 이해하고 있을까봐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저것이 진짜 오빠면 자기 발로 나갔겠죠. 저 짐승은 저희를 못살게 굴고 하숙인들을 쫓아냈다구요.” 방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자, 동생은 넌더리를 냈다.
방 안에 도착하자 동생이 빠르게 빗장을 잠궜고, 그 소리에 놀란 나머지 다리를 접질러버렸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상태가 되었고 몇 시간 만에 기력을 빠르게 잃어갔다. 마지막으로 본 얼굴은 파출부 할머니인데, 나를 몇 번 찔러보더니 빗자루로 쓸어 집 근처 쓰레기봉지에 버려버렸다. 나는 봉지 속에서 희미한 정신을 붙잡으며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숙인들이 식사를 내 놓으라며 닦달하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내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전면승부를 내걸었다. “당장 우리집에서 나가주시오!”
하숙인들을 내보낸 가족들은 오랜만에 교외로 나가는 전차를 타기로 결심했다. 그 안에서 셋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얘기를 나누었는데, 패를 열고보니 전망이 그리 어둡진 않았다. 그레고르가 영업사원이던 시절 벌었던 돈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다가 이자가 붙어 총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 모두 번듯한 일자리를 얻은 상태라 생활비를 버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작은 집으로 옮겨 월세를 줄이기만 하면 되었다.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딸이 늘씬한 몸으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부부는 번듯한 신랑감을 찾아 딸과 맺어주면, 자신들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전차를 빠져나갔다.
어느날 몸이 곤충으로 변해버리면서 돈버는 기능을 상실한 영업사원 그레고르는 일어난 지 몇시간 만에 회사에서 짤립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그에게 등을 돌리죠. 가족에게 그레고르는 자신들을 못살게 굴고 삶의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벌레일 뿐입니다. 그레고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가족들은 느끼는 바가 없어 보입니다. 잠자 부부는 아직 있지도 않은 ‘딸의 예비신랑’을 상상하면서 그가 자신의 처지를 회복시켜줄 것이라 기대하죠.
1910년대에 쓰여진 이 소설은 사람의 가치를 연봉으로 매기는 태세를 비꼬고 있는데요, 2020년인 지금도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최근엔 인공지능이 일부 일자리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돈 버는 기능을 잃은 인간’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한편,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상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화살표(→)는 의문에 대한 저 스스로의 답이니 여러분들도 책을 읽으며 궁금한 점을 떠올려보고 스스로 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몇 가지 상상✒
1. 만약 그레고르 방에 또 다른 곤충 혹은 벌레가 있었다면? 집 밖으로 나가 그들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 죽을 때까지 인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혼자서 방 안에 갇혀있다고 설정했을 것으로 보임
2. 지배인을 놓친 후 왜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까? 계단에서 몇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텐데.
→ 가족과 회사일에 묶여 단 한 번도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현관 문이 열려 있어도, 아버지가 사과를 던져도 절대 집 밖을 벗어나지 않고 방으로 되돌아 오는 이유가 이 때문일 듯.
#변신#카프카#철학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