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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시] EP1.사람이 온다│이병률│바다는 잘 있습니다 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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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시] EP1.사람이 온다│이병률│바다는 잘 있습니다 中

SEA OTTER'S BOOKSHOP 2019. 7. 31. 20:53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 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서 뿜어 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 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