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달책방

[우리가 몰랐던 시] EP2.소유관계(Die Besitzverhältnisse)│시 없는 삶(leben ohne poesie) 中│페터 한트케(Peter Handke)│2019노벨문학상│시집│오스트리아 작가 본문

책 리뷰

[우리가 몰랐던 시] EP2.소유관계(Die Besitzverhältnisse)│시 없는 삶(leben ohne poesie) 中│페터 한트케(Peter Handke)│2019노벨문학상│시집│오스트리아 작가

SEA OTTER'S BOOKSHOP 2020. 3. 6. 21:41

https://youtu.be/NdlOVEYdOJ4

 

YouTube

 

www.youtube.com

 

페터 한트케의 시 ‘소유관계’는

사람과 사물 사이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소유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유관계

 

 

나라는 말만으로 벌써 어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의 첫번째 연에서 페터 한트케는 ‘나라는 말 만으로 벌써 어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며 운을 떼고 있는데요, 이는 시가 ‘나’에 관한 소유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곧바로 '나’의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 모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을 예로들며 시의 문을 엽니다.

 

 

몇몇의 남자들이

벌써 아까부터 샴페인 몇 병을 주문해두고 있었다;

한 여행자가

식당차에 갔다가 자기 칸막이 객실로 돌아온다;

100m미터 달리기 주자들이

부정출발 때문에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 모인다;

전쟁부상자가

기차역 개찰구에서 차표에 구멍을 낸다:

 

 

우리 샴페인은 어디에 있소? 남자들이 자기들의 샴페인 없이 곁을 지나치는 급사를 향해 외친다;

여기 내 자린데요! 여행자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다른 여행자에게 외친다;

내 라인으로 넘어오지 마! 100미터 주자가 신발 끝으로 자기 구분선을 넘어온 다른 100미터 주자에게 외친다;

내 긍지를 도둑맞을 순 없어! 전쟁부상자가 개찰구 업무를 조롱하면서 그의 긍지를 앗아가려는 취객에게 고함을 친다:

 

 

‘소유’의 일반적인 의미

앞선 두 번째와 세번째 연에는 두 곳의 장소, 기차역과 운동장이 등장합니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샴페인, 좌석, 펀칭기계, 트랙 넘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들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소유물을 지키려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승객은 종착역으로 가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차표를 끊었으며, 자기 자리를 차지한 승객을 만나면 화를 냅니다. 전쟁부상자는 삶을 회복하고 있다는 긍지를 느끼며 차표에 구멍을 뚫습니다. 취객이 자신의 업무를 조롱하면 고함을 치죠. 마라토너는 부정출발을 한 옆 주자에게 신발 끝으로 사인을 보내 1등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페터 한트케가 재정의한 ‘소유’의 의미

한편, 언어에는 ‘소유격’이라는 문법이 있습니다. '나의, 우리의, 자기의, 그의’와 같은 말들을 예로 들 수 있죠. 뒤에서 낭독할 네번째 연부터 열 한번째 연까지는 ‘나의’ 뒤에 여러 단어를 붙입니다. ‘나의 소유물’이 무엇이 될 수 있는 지를 정의하는 것이죠. 사실 '나의’ 뒤에는 어떤 단어가 붙어도 말이 됩니다. 또한 ‘나’는 페터 한트케 자신 뿐만이 아니라 정치인, 도둑, 피해자, 환자, 의사, 등반가와 같은 누구도 될 수 있습니다. 소유물들은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 권리, 명령, 정체성, 책임, 성취, 취향, 추억과 같이 숫자로 셀 수 없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나의:

그의 신하들에 대한 지배자의 지상명령

그들의 지배자에 대한 신하들의 감사의 말

도난당한 사람의 고소 가능성

도둑질한 사람의 변호 가능성

더는 의식이 불명인 사람에 대한 구조 가능성

의식이 또렷한 사람의 확증 가능성

 

 

나의 시간이었다! 정치인이 그의 회고록에 쓴다;

내 사진이네! 처음으로 사진을 찍혀본 사람이 놀라 외친다;

내 환자는 유동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환자에게 다시 희망이 생기자 의사가 알려준다;

이것은 나의 산이다! 첫 등반자는 산 정상의 눈에다 국기를 꽂은 다음, 그렇게 일기에 써넣는다;

내 일본인은 어디 있나요? 그 일본인도 속해 있는 저녁모임의 주최자가 묻는다:

 

 

나의:

힘 있는 존재들이 그들보다 작고 친근한 존재에게 내놓는 요구,

그런가 하면 또한 작은 존재들이

감당하기 어렵고 친근하지 않은 존재에게

감당키 어려운 존재가 친근하게 되라고 내놓는 간절한 바람:

 

 

나의 세계와

나의 여건들 그리고

나의 내면과

나의 기억: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가능성

자신을 끼워 넣고 순응할 가능성:

 

 

내 잉꼬 (여자가 사고로 그녀의 전부였던 것을 잃고 난 뒤)

내 땅 (땅을 소유한 남자가 아침에)

내 구두닦이 (작가 빌리 하스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에게)

내 영토 (땅을 소유한 남자가 저녁에):

 

 

드러내기 어려운 진실을 소유하는 경우

이처럼 ‘나의’ 뒤에는 주로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무엇인가가 붙는 경우가 많으나, 때로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붙기도 합니다. 대체로 자기만 알고 있는 떳떳하지 못한 진실인 경우가 많죠. 예를 들면 살해에 가담한 형사의 범행동기 라든가 (자살 포함) 회사에서 저지른 실수, 아픈 몸상태 등을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죽을 때까지 절대 고백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라는 말을 형사는 자신이 수사하는 살인사건에 붙일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살인에 쓸 수는 없다;

라는 말을 죄수는 자신의 감방에다 붙일 수 있지만

교도소 전체에 쓸 수는 없다;

라는 말을 비행기 승객은 자신의 창가 좌석에 쓸 수 있지만

비행기가 이미 추락한 뒤라면 쓸 수 없다;

라는 말을 노동자는 자신의 제품에 붙일 수 있지만

사장 앞에서는 쓸 수 없다;

라는 말을 환자는 자기 엑스레이 사진에 붙일 수 있지만

그 사진이 그가 건강함을 알려줄 때만 그렇다;

 

 

'나의’라는 말 속에 숨은 사회적 관계

 

 

나의

라는 말을 아이는 장난감에 붙일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쓸 수 없다;

삶에 지친 내 환자님들! 하고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시설의 간호사는 말한다;

내 부엌이야! 결혼한 여자가 말한다!

내 외무부장관님! 하고 정부의 수장이 말한다;

아이고, 내 하나님! 하고 깜짝 놀란 사람이 말한다:

 

 

‘우리’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 해왔는가?

열 두번째 열부터는 ‘나의’가 아닌 ‘우리의’라는 말로 초점이 바뀝니다.

 

 

또 우리는 말하고 듣는다.

우리의 현실에 대해

그리고

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우리의 금 보유량에 대해

또한 내 결혼식 사진과

마지막으로

그때 우리의

죄도 없이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에 대해:

 

 

'우리'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열 세번째 열에서부터 페터 한트케는 피하고 싶은 진실 앞에 ‘우리’를 붙여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거나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기마경찰들 또는

우리의 기아 난민들 그리고

우리의 최후심판일 또는

물을 가득 머금은 이에 대한 우리의 공격 그리고

우리의 똥더미 또는

참수된 머리를 위한 우리의 톱밥 그리고

교회계단 아래 우리의 술 취한 마부 또는

우리의 자살 추정수치 -

 

 

부정적인 대상도 소유해야 하는가?

이 소유물들은 평소 ‘우리의’뒤에 붙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평소엔 금, 결혼식 사진같이 긍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들만 붙였지만 페터 한트케는 기아 난민, 술취한 마부, 자살 추정수치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단어들을 붙입니다. '우리의'라는 단어 뒤에 숨기고 싶은 진실을 붙여 정면으로 마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결의가 느껴집니다.

 

 

그는 ‘나의’와 ‘우리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도 예로 들어 줍니다.

 

 

나의 또는 우리의 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이런 경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예를 들면

나의 벌레 먹은 사과

예를 들면

우리의 깨진 전구들

예를 들면

나의 젖은 성냥 -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경우

벌레 먹은 사과, 깨진 전구들, 젖은 성냥 모두 사람이 망가뜨리려고 의도하지도 않았으나 더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물건들입니다. 사과는 벌레 때문에 먹을 수 없게 되었고, 전구는 어떤 물건에 부딪혀 깨지는 바람에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성냥도 새어나온 물에 젖어 불을 붙일 수 없습니다. 페터 한트케는 이런 경우라면 소유물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을 느껴야만 하는 경우

그러나 자신이 일으킨 상황에 관해서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설사 그 일이 의도치 않게 일어난 경우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페터 한트케는 자신이 한 일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행위를 부정하는 것은 진실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도 말할 것이 없다

자신의 화물차 트윈타이어에 깔려 조각난 아이의 시체를

앞에 두고

이건 내 딸이 아니야

이건 내 딸이 아니야, 라고 할 때 -

 

 

저런 경우도

말할 것이 없으니

미친 사람이

지치지 않고 소리치길,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야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야, 라고 할 때 -

 

 

마찬가지로

지명수배된 인물이

수배 몽타주를 앞에 두고

저건 내가 아니야

저건 내가 아니야, 라고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페터 한트케의 시 ‘소유관계’의 낭독과 감상평이었습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도 당당하게 맞딱뜨리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말 그리고 행동을 하는 것이 삶에 큰 가치가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던 시였습니다.페터 한트케의 작품은 다소 난해하다는 평이 많지만, 그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떠올려본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시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