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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정체를 알고 내린 태규의 결정은? EP02~05.젊은부부,화살,송장,선물│개, THE WAR│창작동화 (children's story)│해달책방 본문
할머니의 정체를 알고 내린 태규의 결정은? EP02~05.젊은부부,화살,송장,선물│개, THE WAR│창작동화 (children's story)│해달책방
SEA OTTER'S BOOKSHOP 2019. 9. 7. 23:28‘개, THE WAR’는 해달책방이 순수창작한 5편 장편 동화입니다.
다음 영상은 경제와 관련한 책 리뷰 영상이 될 예정입니다.
추석으로 인해 한 주 공백이 생길 것 같아 한 번에 긴 분량을 뽑아 봤습니다.
EP02.젊은부부
지난 이야기. 101동 203호에 살고 있던 강아지 보리는 노부부가 잠든 사이 집 밖으로 탈출해버려. 둘은 보리를 애타게 찾아다녔지만 일주일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지. 그때부터 남은 강아지 한 마리는 밤 낮으로 짖어 대기 시작했어. 조용할 때도 있긴 했지만 강아지가 잠들 때 뿐이었어.
시곗바늘이 오후 7시를 가리키자 도어락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삑삑삑삑삑….. 또로링
문을 열고 파란 조끼를 입은 남자가 그늘이 잔뜩 낀 얼굴로 들어 왔어.
“평소보다 일찍 왔네?”
아내는 남편을 보고 말했어.
“응. 오늘 택배물량이 별로 없었거든.”
“목요일이 원래 좀 덜 바쁜가봐? 저번주에도 이 시간에 왔잖아.”
“응. 보통 그런 편이래. 형님들이. 나 씻는다.”
남편이 나오자 아내도 “이 닦아야지”하며 소파를 짚고 일어났지.
이를 닦고 나오니 남자가 한 손에 리모컨을 들고 TV를 보고 있었어.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하는 동물 프로그램의 재방송이었지. 누군가가 인터넷으로 구매한 화살촉(브로드 헤드)을 새총으로 쏴서 고양이 머리를 관통시킨 내용이었어. 뇌와 신경을 비켜나간 덕분에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파열된 눈 위를 덮던 살이 구멍을 메워 마치 윙크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
탁 (거실 불 끄는 소리)
“윽! 딴 거 보자, 나 임신한거 까먹었어?”
아내는 거실 불을 끄며 남편에게 말했어.
“어. 그래. 너무 잔인하겠다. 너한테.”
멍하니 TV를 보고 있던 남편은 채널을 돌리다 다시 윙크하는 고양이 화면을 띄웠고 말을 이어나갔어.
“배송 다니다 보면, 저렇게 생긴 고양이들이 한 둘이 아니더라.”
“다 버려진 고양이들일라나.. 불쌍해라”
여자는 화면을 쳐다보며 말했어.
“아 맞다. 저기 밤낮으로 개가 짖어대는 집 있잖아. 101동 203호. 오늘 집 나간 강아지가 아파트 단지에 나타났다더라?”
“누가 그래?”
남자는 약간 놀란 표정을 보였지만, 그에겐 남의 집 개 말고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기에 건성으로 대답 했어. 4개월 뒤엔 아내가 아들 도담이를 낳을 예정이고, 자기 자신도 새로 구한 택배원 업무에 빨리 적응해야 했거든.
아내는 대답 했어.
“옆집 아줌마가. 엘리베이터 타다가 들었어. 아줌마가 아파트 입주자 대표라 단지 대소사를 다 알고 있더라고. 오늘 낮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떠돌고 있는 보리를 보자마자 동물보호연대에 연락 했대.”
보리 : 완전히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 보려고 왔어.
203호 강아지 : 야. 너 이 동네 벗어나서 잡히기라도 하면 100% 안락사나 개고기 행이야. 바닥 뚫린 감옥에서 살 때 못 봤어? 집 나간 개들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 넌 알고있잖아! 왜 나간거야!
보리 : 그땐 너무 더웠고… 무엇보다 바깥세상이 너무 궁금했어.. 난 한 번도 내가 원해서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어. 개농장에서 할머니가 나랑 널 꺼내 준건 너무 고맙지만, 이 집에 온 이후에도 할머니가 케이지 문을 열어주거나 목에 줄을 차줘야지만 나갈 수 있었잖아. 난 나무들이 많은 곳에서 살기로 했어. 이 동네 개들이 말하길 거긴 도시보다 좋대. 숲이라고 부른다고도 얘기해줬어. 걔들이랑 숲으로 갈거야. 너랑 인사하고 나면 바로 떠날거야.
203호 강아지 : 바보야! 평생 갇혀만 살던 개들이 밖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다고 그래! 왜 나간거야! 왜 나간거야!
203호 강아지가 뒷걸음질 치며 보리의 뒤편을 향해 짖기 시작했어. 보리가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포획망을 들고 다가오는 동물보호연대 사람들이 보이지 뭐야? 보리는 너무 놀라 짖지도 못하고 숨을 멈추다가 보호연대가 없는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지.
“어이구, 오늘 아파트가 한바탕 난리었겠네. 큰 포획망 같은거 설치해놓고 잡는거 TV에서 본 적 있어.”
“동물보호연대가 포획망을 단지 곳곳에 설치해놨는데, 어찌나 영리한지 요리조리 다 피해서 밖으로 도망쳐버렸대. 흐아암. 졸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피곤하면 얼른 자. 벌써 10시야”
“응. 여보도 잘자.”
왈왈왈!
부우우웅!
슈우우우웅!
12시가 다 된 한 밤, 남자는 잠에서 깨어 났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지. 101동 203호에서 울리는 개 짖는 소리, 아파트 옆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소리, 심야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는 이 소리를 녹음해 유튜브에 올린다면 최소 싫어요 천 개를 받을게 분명할 소리라고 생각하며 아침까지 잠을 설쳤단다.
EP03.화살
며칠 후. 아파트 단지에 남편이 일하고 있는 택배 회사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어. 그 안엔 남편이타고 있었지. 원래 이 곳은 담당지역이 아니긴 하지만, 동료 한 명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이 동네 택배 물량까지 담당하게 된거야. 101동 앞에 도착한 남자는 내려야 할 박스들을 살펴보다 203호로 갈 택배 하나를 발견하게 돼.
SH택배
받는 곳 : 서울특별시 원만로 110, 공주 아파트 101동 203호
내용 : 강아지 몸에 딱 맞춘 사료 - 진돗개 용 2kg 1개
‘오늘은 물량이 별로 없으니 택배 가져다 주는 김에 한 마디 하고 와야겠다’
띵동.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어.
띵동. 띵동.
또 반응이 없었지.
띵동. 띵동. 띵동.
그의 손가락에는 점점 짜증이 묻어 나기 시작했어.
‘혹시 집 안에 없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남자는 박스를 문 앞에 내려다 놓았어.
띵똥띵똥띵똥띵똥띵똥띵똥!
그는 화풀이라도 하자 싶어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르다 문을 열고 나온 옆집 할머니를 보고 행동을 멈췄어.
“택배가 왔으면 그냥 문 앞에 두고 가요. 시끄럽게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르고 난리야. 옆 집 사는사람을 생각 좀 해줘야지. 보자하니 이 동네 택배 배달은 처음 하는 것 같은데, 원래 하던 사람이 얘기 안하던가요? 앞 집 노인 둘 다 농인이라는거? 다음부터는 초인종 누르지 말…”
할머니가 얘기를 하는 와중에 철컥하고 문 여는 소리가 들렸어. 남자는 깜짝 놀라서 복도 밖으로 사라졌지. 농인 할머니는 남자를 보기도 전에 그가 놓아 둔 택배 박스에 막혀 문을 제대로 열지 못했어. 탁 하고 걸리는 소리가 들리자 할머니는 한 번 더 문을 열었고, 목줄을 한 진돗개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왔지. 그리고선 택배 박스를 문 안에 넣어두고 곧바로 산책을 하러 나갔어.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아내에게 말했어.
“101동 203호 개가 성대가 나갈 때까지 짖어대도 주인이 가만히 있는 이유를 알아 냈어.”
“이유가 뭔데?”
“203호 노부부가 농인이래. 귀가 안 들리는 거지. 이 동네 택배 맡은 동료가 오늘 휴가라 그 집에대신 배달하다가 알게됐어. 오늘 퇴근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대로 놔두면 안될 것 같애. 강아지 성대 제거 수술이라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 여보가 내일 옆집 아주머니한테 한 번 얘기해보면 안돼? 주민들끼리 천원이라도 모아서 성대제거 수술 시켜주자고. 주인이 귀가 안 들리니까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못 느끼잖아.”
“주인이 농인인데 수술을 시킬까?”
“그건 물어봐야 알 일이지. 민원을 계속 넣는대도 시정이 안되면 이사를 가거나 성대제거를 시키거나 둘 중 하나라도 해야지.”
남편은 평소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했어.
“알았어. 내일 물어 보기는 할게.”
다음 날 낮. 아내가 옆집에 사는 입주민 대표 아주머니에게 얘기를 전달하자, 할머니가 매일 산책 나가는 오전 10시가 되면 찾아가서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했어. 그 때 아니고선 할머니를 잘 볼 수 없기 때문이지. 아내의 예상대로 노부부는 강아지 목에 절대 칼을 대지 않겠다고 말했어.
왈왈왈!
부우우웅!
슈우우우웅!
‘맛있는 음식도 세 번만 먹으면 무뎌 진다고 하더만, 소음은 왜 이렇게 익숙해지지가 않는 거야.’ 잠을 설치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내 몰래 거실로 나갔어. 거실 서랍장에는 새총과 화살촉이 있었지. TV 프로그램에서 봤던 화살촉이었어. 그는 새총과 화살촉을 꺼내 들어 203호를 향해 힘껏 당겨 쏴 버렸어.
쨍그랑!
그리고 낑낑대는 소리.
남자는 생각했어. ‘저놈의 주인들은 개가 죽는지도 모른 채 자고 있겠지. 킬킬’
다음 날 아침. 물류센터로 가기 위해 화물차에 올라 타려는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잡는 느낌이 들었어.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 보니,
“김태규씨. 재물손괴죄와 동물학대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이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헉!”
태규는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
베란다로 나가봤더니 203호 창문은 깨지지 않았고, 서랍에는 화살촉도 새총도 없었어.
‘휴, 별 꿈을 다 꾸네. 진짜 같았어 정말.’
EP04.송장
태규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한 사무실에서 반품을 포함한 여러 택배 박스를 내리고 있었어.
“대리님. 시간 괜찮으시면 송장출력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
태규의 옆에서 사수와 부사수로 보이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
“뭐 송장? 다시 말해봐.”
사수로 보이는 사람이 다그쳤어.
“송장출력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수는 손에 든 종이 몇 백장을 책상에 탁탁 치며 말했어.
“그렇게 하면 널 도와줄 수 없어. 송장(송ː장)은 시체고, 송장(송ː짱)은 택배 명세서. 무슨 뜻인지알지?”
“아..네..”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이해했습니다. 송장(송:짱)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자, 송장(송:짱)출력 할 때는 규격 박스에 넘치는 물량을 주문하는 고객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 송장(송:짱)을 여러 번 출력해야 한다는 말이야. 처음 뽑을 때 놓쳐도 상관없어. 나중에라도 다시 출력해”
티 나지 않게 둘을 곁눈질 하던 태규의 머릿속이 순간 번뜩였어. 골똘히 생각하던 그에게 사수로보이는 남자가 말했어.
“아저씨, 안가세요?”
“아..내려 놓은 수량이 몇 개인지 체크하고 있었어요.”
그는 급하게 둘러댔어.
“송장 바코드 찍으면 수량 다 나오잖아요. 택배 직원 아닌 나도 안다 그건.”
“다 내려놨으니 갑니다.”
태규는 차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생각했어.
‘택배 박스에 독극물을 넣은 개사료를 포장해 할머니에게 선물하는게 어떨까? 택배원으로써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선물 하는거지. 택배원으로 가면 담당지역이 아니라 들킬 확률이 높으니까. 대신 선물상자에는 할머니가 시켰던 사료 송장을 재출력해 붙인다. 그러면 내가 준 사료 때문에 개가 죽었는지, 일주일 전에 할머니가 직접 산 사료 때문인지 알아내지 못 할거야. 진돗개 성견이 2kg 사료를 먹어 치우는 데에 얼마나 걸릴까? 일주일? 일주일 동안 택배박스가 집에 남아 있도록 분리수거 날짜 직후에 선물하면 되겠다. 할머니가 경찰까지 동원할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알리바이는 만들어 놔야 하겠지.’
그는 차에 올라 타 시동을 걸고 신호를 받았어. 빨간 불이었지. 태규는 생각을 이어갔어.
‘아침시간 사무실에는 경리 한 명 뿐이고, 그는 자주 담배를 피우러 나가니까 자리를 비웠을 때 송장을 출력하면 되겠다. 그럼 강아지를 죽일 수 있는 독극물에는 뭐가 있을까?’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고 태규는 직진했지. 그는 자일리톨 껌을 먹은 강아지가 발작을 일으키거나 혼수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어. 자일리톨 껌을 썰거나 손으로 찢어 사료에 섞는다면, 충분히 개 껌으로 착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강아지가 사료 봉지를 비우는 날은 태규와 아내가 소음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될 것이었지. 어쩌면 그보다 이르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강아지가 죽을 거라는 점엔 변함 없으니 운전에 신경 쓰자고 생각하며 물류센터로 돌아가.
물류센터에 도착하자마자 태규는 다음 주 목요일에 휴가를 쓰겠다고 말해. 인력 담당직원이 결근계를 던져주며 전화를 하러 잠깐 나가. 경리도 자리를 비웠는지 사무실에 태규 혼자 남게 되었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그는 경리의 컴퓨터로 가 송장을 출력하고 자켓 안쪽 주머니에 숨겼어. 그리곤 결근계 사유를 적었지.
사유 : 아내와 산부인과에 동행하여 정기검진을 받을 예정
담당자가 돌아와 사유를 보더니 바로 오케이 해 주었어. 목요일은 한 주 중 가장 일이 적은 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했지. 그 때까지 경리는 돌아오지 않았어.
‘휴. 경리가 골초라 다행이다.’
퇴근한 그는 송장을 꺼내 TV 셋톱박스 아래 빈 서랍에 넣어 두었어.
EP05.선물
목요일이 되었고, 태규 부부는 산부인과 정기검진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 아내가 머리를 말리는 사이, 그는 거실 서랍에 숨겨 둔 택배박스를 들고 밖으로 나왔어. 203호 할머니가 항상 산책을 나오는 시간인 오전 10시였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203호 할머니를 발견한 태규는 허리를 힘껏 숙여 인사해.
“누고?”
그는 203호 할머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 시간에 101동에서 진돗개를 끌고 나온 유일한 할머니였기 때문에 누군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어. 그렇지만 인사가 너무 깍듯했지. 할머니는 그를 본 적이 없을텐데 말이야.
“전 동네 이웃이에요. 저번에 집 나간 강아지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보고 안부도 물을 겸 선물 하나 드리려고 왔어요”
그는 할머니가 농인인 걸 모르는 상태여야 했지만, 평소에도 바디랭귀지를 자주 쓰는 것처럼 손짓 발짓을 다 써가며 할머니에게 줄 선물을 설명했어. 다행히 할머니는 강아지를 위한 선물이라는 걸 알아들은 듯 했어.
태규는 송장이 붙지 않은 반대편을 열어 박스 안에 든 사료를 보여 줬어. 마치 새 상품인 것마냥.
“우리 이진구(가명)가 잘 먹는긴데 우찌 알고 사왔노?”
할머니가 화색이 되어 그를 쳐다봐.
태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 침을 꼴깍 삼켰어.
“몇 동 몇 호 사는교? 받기만 해서 되겄나.”
“아니아니. 전 바라는 거 없이 그냥 드리려고 온 거에요. 할머니 지금 산책 나가시면 제가 현관문 앞에 두고 갈까요?”
잘 못알아 들으시는 할머니를 위해 또 다시 열심히 손짓 발짓으로 설명한 그는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택배를 놓고 왔단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뭐 하다가 왔냐며 툴툴거리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산부인과로 떠났어.
“아참, 근데 그 양반이 내가 203호 사는지 우째 단번에 알았을꼬?”
할머니는 의아해하며 진구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산책을 갔어. 할머니는 태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면밀한 성격일 지도 몰랐지.
일주일이 지나고 8월 마지막 주가 되자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했어. 집집마다 더위와 소음을 견뎌가며 열어 놓았던 창문들을 조금씩 닫기 시작했지. 매미 소리도 점점 잦아 들었단다. 203호에서 울리던 개 짖는 소리도 점차 들리지 않다가 갑자기 아예 멈춰버렸어. 창문을 닫은 탓인지 진짜 개가 짖지 않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어. 며칠 후 아내가 옆집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어.
“203호 강아지가 갑자기 죽어버렸대. 이유가 뭔지 알아? 할머니 집에 놀러 온 손자가 초콜렛을 개한테 먹였대! 사료 그릇에 초콜릿자국이 묻어 있었던거지. 지 딴에는 간식으로 주려고 했겠지만 아이가 뭘 알겠어. 강아지에게 초콜렛은 독이라는 걸. 아이가 충격 받을까봐 가족들이 진구 죽은걸 비밀로 부치고 급하게 장례식을 치뤘다고 해. 할머니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할아버지는 말은 씩씩하게 해도 할머니 못잖게 상심이 커 보인다 하더라.”
태규는 속으로 생각했어. ‘진짜 죽어버리다니! 그것도 가족이 먹인 독으로! 가여운 것!' 개를 죽이기 위한 그의 노력은 결국 헛수고가 되었지만 더 이상 개 짖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어.
아내가 이어 말했지.
“여보… 그나저나 이번 여름은 에어컨 없이 잘 보내긴 했지만 우리 도담이 태어나면 중고라도 하나 사는게 어떨까?”
태규가 대답해.
“그러자. 내년부터는 에어컨 달고 창문 꼭 닫고 살자. 동네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는 소리 안들리도록. 나랑 여보랑 우리 도담이 셋이서만 조용하게 살아보자구.”